<조의현의 화장실 칼럼> 분뇨는 어떻게 사용되어 왔을까?

관리자 │ 2024-04-24

HIT

5

분뇨는 어떻게 사용되어 왔을까?


농사에 필요한 거름으로 거름(비료)으로 사용된 것은 분뇨 최초의 용도이자 가장 일반화된 용도였다. 분뇨는 화학비료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전까지 동양은 물론 유럽에서도 농사에 필요한 거름으로 사용되었다. 똥거름은 농작물을 살찌우는 단순한 비료 역할에 더하여 토양을 개량하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30년경에 쓴 농경시에서 '밭에 똥을 뿌리는 것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읊었다. 중국 송나라 때도 '분)을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달리 사용할 것'을 권하였다. 한 포르투갈 선교사의 일본여행기에는 '우리는 분뇨를 운반해서 버려주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쌀이나 돈을 받고 판다.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분뇨 값이 서민들의 것보다 비싸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조선후기 농업백과전서인 『임원경제지』에 분양)이라는 항목으로 분전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등장하며, 옛 농촌에서는 '한 사발의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 똥과 재는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각종 약제의 재료로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운 수메르인은 현대 의학에서 사용되는 약의 제조법을 거의 다 개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소변에서 약의 원료인 질산칼륨을 추출해 만든 수렴제이다. 중국 북제 때의 권세가 화토개라는 사람이 상한이라는 중병에 걸렸을 때 한 의원은 인분에 즙을 내어 조제한 황룡탕이라는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열이 높거나 조급증이 심하면 더운물에 똥을 풀어먹인다' '악성종기도 똥을 초에 버무려 붙이면 하루 만에 근이 빠진다'는 등 똥으로 병을 고친 이야기들이 구전된다. 서양에서는17세기 말 『대소변으로 모든 병을 치유한다』는 책이 출간되기도했으며, 일본에서는 건강을 위해 자신의 오줌을 복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듯 치료요법의 일환으로 인간의 배설물을 사용하는 풍습은 무수한 연구와 사색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 분야의 자료수집전문가인 존 그레고리 버크는 신성한 똥』에서 '특히 약학에 관계된자료를 집적하고 서로 비교하는 가운데, 나는 이 간단한 한 장의 분량으로는 그 모든 것을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미신적인 흔적부터 현대 의학에 이르기까지, 약제로서 똥과 오줌의 역할이 고금동서를 망라하고 무수히 많았다는 의미이다.


건강을 진단하는 자료부터 범죄수사의 한 방법으로 옛날 독일의 법령에는 의사가 환자의 배설물을 맛볼 의무가 있다는 규정이 있고,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시대 어의들은 대변의 형태를 보거나 맛봄으로서 임금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약을 처방하였다. 현대 심상의학에서도 배설물을 분석해서 신체의 특성과 상태를 추정하려는시도가 진행되고, 소변으로 임신 여부와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는방법을 연구 중이다. 오늘날 병원에서 실시하는 모든 신체검사에서는 대변과 소변을 채취하여 건강상태와 질병을 검사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오늘날 범죄수사에서는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대변을 감식함으로써 범인의 특성, 생활환경, 항문질환 등을 감별하기도 한다.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은 물론 범죄수사에까지 동원되는 분뇨는 우리 몸 안의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최대의 정보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활과 미용에 필요한 재료로 고대 로마인들은 소변을 이용해 비누를 만들고 자신의 소변으로 치아를 닦았다. 치약과 구강청정제의 성분으로 쓰인 소변의 역할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 말까지 여자들이 소변으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으며, 에스키모 인들은 지금도 오줌을 이용해 머리를 감는다.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는 아이의 오줌으로 목욕을 해서 매끄러운 피부를 가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에서는 빨래하는데 소변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당시 세탁소는 세제로 사용할 오줌을 조달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을 겸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소변을 가죽의 무두질, 염색, 잉크얼룩 제거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비상시의 음료로 원래 배설물을 먹는 의식은 전쟁 중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먹을 것이 차단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에서 유래한다.


구약성경에는 몇 차례나 성 안에 갇혀 고립된 상태에서 로마군에 맞서던 유태인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랍사게가 저들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성위에 앉은 사람들에게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한 것 아니냐(열왕기 하편 18장 27절, 이사야서 36장 12절)'는 기록이다.


이러한 사례는 실제로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을 피해 동굴에 숨어 있던 오키나와의 일부 주민들은 5일 동안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시며 목숨을 부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강원도 태백 지역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갇힌 광부가 막장 안에서 자신의 소변을 마시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4일 뒤에 구조되기도 하였다.


역사를 확인하는 자료로 역사학자들은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똥의 화석인 분석(Coprolite)을 통해 당시 인류의 생활 상태나 환경을 알아내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와이만이 세인트존강의 담수에서 분석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캐나다의 고생물학자 칼렌과 기생충학자 카메레온이 화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분석을 최초로 연구한 이래 아메리카 대륙의 고고학적 연구에 중요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이 부분에 대하여 알려진 바가 없다.


전쟁의 무기로 분뇨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조선 중종 때인 16세기 중반에 '변방에서 적들이 와서 우리 성을 치므로 이 기계로 막는 것이 좋겠으며, 인청(靑)과 더러운 물건을 많이 저축하였다가 적들이 올 때 이것을 내려 보내도 되겠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 게릴라들은 똥이 상처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대변을 묻힌 날카로운 막대를 땅에 묻기도 하였다.


비폭력적 투쟁의 수단으로 똥은 이데올로기나 문학적 논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투쟁 수단의 한 가지가 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야당이 여당을 '똥 같은 체제'라 부르고 여당은 야당을 '똥 같은 놈들'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사이버 혁명가들은 말을 통한 비방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배설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똥은 옛날부터 탄압당하는 자들의 무기였으며 비폭력적인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1966년 국회에서 한국비료공업 주식회사가 사카린을 건설자재로 가장해 밀수한 사건과 관련하여 대정부 질문을 하던 중에 김두한이 미리 준비해간 분뇨를 국무위원에게 투척하는 기상천외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땔감과 에너지원으로 인도의 시골에서는 소똥을 두드려 원반모양으로 만들어 벽에 눌러 붙여 말린 뒤에 똥이 벽에서 떨어지면 감으로 사용한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하게 여기는데, 소들이 싸는 똥의 25퍼센트 정도가 연료로 사용된다. 옛날 미국 서부에서도 정착민들이 마른 들소 똥을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 오수 발효 시설에서 발생하는 메탄인 바이오 가스는 대단히 값진 에너지원으로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 등지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연료로 사용되며 덴마크와 미국에서는 전력 생산에도 이용된다. 르완다는 교도소의 대부분을 수감자들의 대변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운영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때때로 종족번식의 도구로 토마토나 무화과의 씨는 사람이나 새의 소화계통을 통과하면서 분해되지 않아서 씨앗의 역할을 하며 종족번식의 도구로도 활용된다. 사람이나 새의 똥 속에 남아 있던 씨앗들이 밭이나 들판 등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커피의 원료로 원숭이, 다람쥐, 사향고양이 등 커피 열매를 먹는 동물들의 배설물을 이용하여 커피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친 커피콩으로 볶아 만든 제품은 자바커피 가운데에서도 가장 최상품으로 꼽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돼지의 먹이로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일반화되었던 돼지우리화장실은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통합한 시스템이라고 하겠다. 제주도의 '통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가족의 분뇨를 별도로 치우는 수고를 덜 수 있고,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며, 다시 돼지가 배설한 분뇨는 농사용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돼지우리화장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제주 흑돼지의 맛은 유명세를 타고 있다.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무병장수를 비는 의미에서 아기 이름에 '똥'자처럼 천한 글자를 넣었다. 조선 시대 세조의 원손 휘(諱)는 똥)이었고, 고종과 황희 정승의 아명은 각각 개똥이, 도야지였다. 개똥이, 쇠똥이,똥이, 똥개는 물론 뒷간이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악취가 나고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태어난 아기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장수한다는 속설에 따라 뒷간에서 아이를 낳는 풍습도 있었다. 이 사례에 해당하는 실존인물이 있다. 외갓집화장실에서 태어나 개똥이라는 별명으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한국화장실협회와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 심재덕이다.


그는 '미스터토일렛(Mr. Toilet)'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자신이 지은 변기모양의 본가 '해우재'에서 생을 마감했다. 화장실에서 태어나 화장실에 관한 일로 일생을 마무리하고 화장실에서 영면한 최초이자 마지막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글쓴이 조의현 이담북스 중에서


이전글 < 조의현의 화장실 칼럼 > 화장실을 탄생시킨 '위대한' 분뇨
다음글 <조의현의 화장실 칼럼> 분뇨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생활...